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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의의

봉암 성지(방축골ㆍ계마대 교우촌)

봉암의 ‘방축골’과 ‘계마대’는 1839년의 기해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이주해 와서 교우촌을 만들고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했던 마을이다. 당시 이곳에는 김백심(암브로시오. 1794∼1866), 송군명(바오로), 김경장, 이 베드로 가족이 살았다. 또 얼마 뒤에는 충주 광벌(충주시 신니면 광월리)에 살던 민윤명(프란치스코. 1822∼1867) 회장 가족이 계마대로 이주해 왔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사목 순방 도중에 방축골과 계마대에 들러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고, 김백심(암브로시오)의 막내아들 사도 요한을 신학생으로 선발하여 진천 배티에 있는 조선대목구 신학교로 보냈다. 당시 요한의 나이 열여덟 살이었다. 이후 그는 배티 신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854년 3월 말레이시아 페낭 신학교로 가서 유학했지만, 1863년에 귀국하자마자 환속함으로써 성소의 결실을 얻지는 못하였다.

방축골과 계마대 공동체가 박해자들에게 발각된 것은 1866년의 병인박해 때였다. 충주 진영에서 파견된 포교와 포졸들이 들이닥쳐 신자들을 체포한 것이다. 그 결과 김 암브로시오는 서울로 압송되어 1866년에 순교하였고, 그의 차남 김성서(파비아노)와 계마대의 민 프란치스코 회장은 충주로 끌려가 1867년 초에 순교했으며, 이 베드로는 1866년 수원에서 순교하였다. 1868년에는 천안 복구정(천안시 북면 연춘리)으로 피신해 살던 김 암브로시오의 장남 김성회(바오로)와 막내 사도 요한(신학생 출신)이 체포되어 서울에서 순교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방축골ㆍ계마대 출신 순교자 중에서 민윤명(프란치스코) 회 장의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